2013년 1월 23일 수요일

아리아인(Aryans)

아리아인(Aryans)
인도와 이란에 거주하며 인도.유럽계의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총칭.
‘아리아’은 산스크리트어 아리야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귀한’이란 의미로서 그들이 자칭하는 말이다.
중앙아시아 방면에서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기원전 2000년경, 남방.서방에 이동하여 어떤 무리는 인도에 들어가고, 어떤 무리는 이란 고원에 정착했다. 현재는 인도유럽어족 전체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히틀러가 언급하는 아리안인(주로 게르만인)이 그것이다.

*산스크리트어
간칭 범어는 인도의 고전어로, 힌두교, 대승불교, 자이나교 경전의 언어이자 수많은 인도 제어의 고급어휘의 근간을 구성하는 언어이다.
인도 공화국의 공용어 중 하나로, 아직도 학교에서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고 관련된 문학/예술/방송활동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브라만은 산스크리트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다.

*게르만족(Germanen, Germanic peoples)
고대 유럽의 게르만계 민족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게르만인들은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한 방언들을 사용했으며 공통된 신화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켈트족에 비해 철기 보급이 떨어지고 무기의 시대 차이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차이가 많이나 약세였고 켈트족의 로마화 이후에도 한동안은 계속 그 상태였다. 하지만 로마와 인접해있던 프랑크족과 같은 게르만족은 로마의 비호뿐만 아니라 용병 차출과 교역 등으로 많은 부와 권력을 쌓고 일부 로마화가 되어서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 가장 성장하게 되는 주역들이었다.


아리아인의 대이동
수메르 인의 대이동이 끝나고 이후 천여 년동안에는 별다른 이동이 없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2000년 경부터 아리아인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이동의 주원인은 지구의 기온이 떨어지고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강수량이 줄어들어 초원이 사막화되기 시작하며 동물의 수가 줄어들어 식량 자원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동쪽에서 알타이 어계 종족들이 계속 이동해 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유럽의 켈트 족, 지중해 연안의 라틴 족과 그리스 족, 북유럽의 게르만 족은 제 2차 대이동의 주역들이 었다. 기원전 16세기경 바빌로니아를 a침입한 히타이트 족도 이무리에 속한다.
제 2차 대이동시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 인들은 황하 유역에 정착했고, 일부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기원전 2000년경에 고조선을 건국했다.
제 2차 대이동이 일어나고 나서 생긴 힘의 공백 지대로 알타이 어계 종족들이 계속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기원전 1500년 경부터 제 3차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이 시절 인도로 이동한 아리아 인이 인도 아리아 인이고, 유럽으로 이동한 아리아 인이 슬라브족이다.
아리아 인의 대이동이 있고 난 이후, 인류는 농경을 위주로 하는 정주 생활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종교와 철학이 필요했기 때문에, 기원전 5세기경부터 그리스.인도.중국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상들이 출현하게 된다.

아리아인의 이주와 종교
기원전 1500년경 중앙아시에서 인더스 강 유역으로 들어온 아리아인들은 인도에 새로운 종교와 문화를 꽃피웠다. 이들은 인더스 문명의 원주민들이 농업을 중심으로 한 농부들이었다면, 아리아인들은 목축업을 위주로한 유목민들이었다. 따라서 가축을 위해서는 럽은 초원이 필요했고 새로운 목초지를 향해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다. 학자들의 일반적인 추측에 의하면 이들은 여러 인도-유럽 종족의 하나로 카스피아해와 아랄해 사이에 위치한 동 유럽의 대초원지대로부터 동쪽으로 이주해 왔다. 밤녕에 서쪽으로 이주해간 종족은 오늘의 이탈리아, 그리스 등이었으며, 나머지는 중앙아시아의 일부와 이란에 정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가운데 아리아인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산맥을 넘어서오늘의 파키스탄 영내에 저악하고 점차 인도의 동북부와 뭄바이지역으로까지 이주의 행렬이 계속된 것이다. 아리안이 이식해온 문화는 인더스 문명의 말기에 보여 준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아리아인의 인도 정복과 새로운 문화의 창출은 지정학적 위치의 고립과도 관련이 있다. 이미 고대 인더스 문명의 쇠퇴로 메소포타미아와의 무역이 단절 되었을 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의 높은 산맥은 고대 중국 문화와의 단절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리하여 아리아인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종료를 창출해 갈수 밖에 없었다.인더스 문명의 계승자들은 그들 문화의 현학적인 요소와 경전들을 포기하거나 중요시하지 않게 되었고, 히말라야의 문화와 초원의 문화는 문자 이전의 느슨한 조직에 불과 했다. 따라서 아리아인들에게 미칠 수 있었던 외부적인 종교적 영향은 주로 원시적이 ㄴ마술과 신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들이 처음에는 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점차 아리아인들의 신념과 생활의 사고 속에 침투되고 반영되어 갔다. 그러한 신념체계는 보다 세련된 형태로 경전이나 생활 풍속으로 이어져갔다. 이른바 초기 아리아인의 신들을 둘러싼 종교 전통이 후기의 힌두교 전통으로 발전해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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