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3일 일요일

훈 족

훈 족은 중국 국경 부근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유럽에 이르렀다. 한 시대의 사서들에는 흉노로 알려진 호전적인 민족에 대해 서술한 부분들이 나오는데 바로 그 흉노 족을 훈 족이라고 볼 수 있다. 흉노 족은 중국 군주들을 대단히 골치 아프게 했다. 그들은 한나라와 여러 차례 싸웠으며, 그 중 한번은 크게 승리해서 엄청난 양의 금과 비단 여자 노예 같은 공물을 얻었다.  

AD 5세기 경, 역사적으로 가장 크게 중상당해왔고 오해 받아온 민족 가운데 하나인 훈 족은 티소강 중류 근방에 본부를 차렸다. 티소 강은 도나우강 동쪽에서 그 강과 거의 나란히 흐르면서 헝가리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한다.
훈 족은 5세기에 이 평원을 기점으로 우랄로부터 론 지방(프랑스의 중도부 지방)에까지 이르는 드넓은 제국을 주로 자기네와 손을 잡은 민족들이나 자기네에게 종속된 민족들을 통해서 다스렸다. 그중 가장 알려진 인물은 아틸라(Attila)이다.
아틸라는 불과 8년 동안만 훈 왕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당시 그가 발휘하는 군사력은 대단해서 동.서 로마 제국을 거의 파멸 직전까지 몰고갔다. 한때 그는 콘스탄티노플 성벽 앞까지 쳐들어가 막대한 양에 달하는 황금 공물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 후 당대 사람들은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이끌고 저 멀리 오를레앙까지 진격하는 그의 모습을 목도 할 수 있었다. 그 이듬해 그는 로마에 진격해 번창하던 이탈리아 도시를 하나하나 점령해갔다.
주고 기독교인이었던 아틸라의 적들은 그를 ‘신의 정벌자’로 여겼지만 , 한 로마 황제의 누이는 아틸라에게 자신의 반지를 보내 구혼의 뜻을 전했다.  후세 사람들은 대체로 아틸라를 피에 굶주린 폭군에 묘사해 왔다.

그들의 지도자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의 서진은 첫 번째로 기록된 기마 민족의 대규모 이동으로, 그 당시 우월한 기동성과 발달한 활을 무기로 삼아 유럽으로 서서히 진격했다. 그들은 진격하면서 알란족, 스키리족, 사르마트족, 게피타이족, 헤룰리 족, 콰디 족, 슬라브족, 동고트족 등을 정복하게 되었는데 자발적으로 합류한 민족들도 있었고 일부는 도망가고, 나머지는 끝까지 싸우다가 정복당한 민족들도 있었다. 예로 알란족은 처음엔 훈족과 맞서 싸웠느나 크게 패한 뒤 훈족에 흡수되어 전투에서 큰 역할을 하였고, 슬라브족 또한 용감하게 싸웠으나 패배하고 훈족에게 흡수된다. 훈족은 피지배층들에게 그리 가혹한 지배자들은 아니였다. 그들의 노예들은 로마 제국과 사실상 마찬가지로 노예 또한 자유민이 될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농부들에게 농사를 짓도록 배려하였으며 그들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도록 해주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시킨 훈족은 5세기 중엽에 가장 세력을 떨쳐 아틸라의 지휘 아래 서쪽은 라인강에서 동쪽은 카스피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루었다.

453년 아틸라가 죽은 후 그의 맏아들인 엘라크가 왕위를 이어 받았다. 처음엔 그의 아버지 아틸라와 같은 단 하나의 권력을 쥐고 있는 왕으로 즉위 했지만, 그들의 두 동생인 뎅기지크와에르나크는 아틸라 치세 이전에 블레다와 아틸라가 권력을 나누어 가졌던것 처럼 권력을 여러명이서 나눠가지길 원하고있었다. 그 결과로 두 동생들은 일부 권한을 받게 되었지만, 이것은 오히려 불안하던 정치 체체의 혼란을 야기했고 결국엔 당파 싸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 싸움에서 엘라크가 승리 했고 두 동생들은 훈 제국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그 사태를 수습 한 뒤에도 훈족의 정치 체체는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는데 결국엔 게피타이 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훈족은 게피아티 족과 여러 게르만 민족의 연합과 싸웠으나 패배하여 훈족 제국은 내분으로 정복당한다.
추방 당했던 두 왕자 뎅기지크와 에르나크는 각자 그들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도나우 강 하류로 이동했다. 그 중 뎅키지크는 아틸라가 옛날에 요구하던것 처럼 동로마의 황제 레오 1세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하며 거절할경우 전쟁도 불사할것이라 단언했다. 하지만 동로마가 훈족을 보는 시각은 아틸라 치세때와는 달라진 후였다. 오히려 동로마는 공물은 커녕 훈족이 동로마에게 충성하라며 요구했고, 뎅기지크는 동로마와 전쟁상태에 돌입한다. 하지만 뎅기지크의 훈족은 전쟁에서 크게 패배하였고 뎅기지크는 전투에서 사망한다.
한편, 그의 동생 에르나크는 그의 형과는 달리 동로마 황제 레오 1세에게 땅을 요청하며 제국의 속주가 되겠다고 청했다. 레오는 그들에게 청을 받아들여 땅을 떼어주었고 에르나크의 훈족은 도브루자 지역에 정착하여 동로마의 일부분이 된다. 그 후로 동로마 군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동로마에게 충성한다. 그후로 불가르족이 침입때 불가르족과 혼혈화 되었다.
일견에는 훈족 자체가 없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현재 훈족의 후계 민족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헝가리인과 터키, 몽골은 이들을 자기 민족의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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